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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이 드러낸 인간과 자연의 대립 그 속에 쓰레기는 누구?

by Dragon Massage(D.M.) 202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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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국제영화제 작품상,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우리나라에 소개된 일본 작품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한 지역 마을에 글램핑 야영장을 건설하겠다는 주민 설명회가 열린다. 이후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현장을 잘 아는 똑똑한 지역 주민과 책상 앞 돈 계산만 하던 기업 자본가와의 대립 구도가 큰 그림이다. 한 쪽은 자연과 순수의 형태를, 다른 한 쪽은 이익과 탐욕, 철저한 ‘악’이 바탕이 된 인간상 간의 대립이다. 진실은 엄연히 존재하나 이익에 눈먼 인간의 탐욕이 결국 생명을 죽인다. 주인공은 야스무라 타쿠미(오미카 히토시), 그의 딸 야스무라 하나(니시카와 료), 연예기획사 소속 개발분야 직원 타카하시(코사카 류지), 요양보호사였다가 기획사에서 업무를 맡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 등이다.

 

간명한 메시지에 단순한 줄거리다. 도쿄 근처 한적한 시골, 글램핑장을 건설하겠다고 코로나 보조금을 노린 그것도 연예기획사, 지역개발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업체 하나가 먹구름을 몰고 온다. 업자들의 논리는 지역이 개발되면 인구와 일자리 늘어나니 서로 좋은 게 아니냐는 것. 보조금 수취를 위한 ‘쇼’같은 설명회에서 회사 소속 2인(타카하시, 마유즈미)은 주인공과 마을 사람들에게 얼토당토한 소리라며 호되게 당하고 배운다. 결국 월급쟁이 신세에 업자 측은 ‘쓰레기’라며 마유즈미의 넋두리가 나오고, 다시 술 한병 사들고 설득하겠다고 찾아가지만, 타이밍과 자세가 필요한 장작패기 기술만 배우고 또 다시 예우와 정신을 차린다. 주인공 야스무라는 직원을 상대하다가 딸의 퇴교를 챙기지 못하고 총에 상처가 난 사슴 뒤를 쫓다가 설원 한가운데 코피가 난 채 누워있는 걸 발견하고 만다.. 무표정의 야스무라는 직원의 목을 졸라 버린 뒤(죽이진 못한다) 딸을 안고 숲으로 사라진다.

 

영화는 상징이란 점을 사용해 선을 만들어간다. 대표적인 상징물이 ‘사슴’이다. 먼저 사슴은 주인공과 그 딸을 직유하고 있다. 자연 속 순수함을 나타낸다. 자연에 속한 사슴이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는 총에 빚 맞았을 때 죽을까봐 두려워서 아니면 새끼가 죽거나 다쳤을 때 두 가지라고 한다. 사실 그것도 편견일 것이라는 게 주인공의 말. 도시에서 재미 좀 보자고 내려오는 사냥꾼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역시 인간의; ‘악’을 상징한다.) 인간의 재미와 쾌감을 위해 시간과 흐르던 자연은 생기를 읽고 사라져 간다.

 

 

 

 

‘물’ 역시 중요한 흐름의 단서다. 설명회에서 마을 이장은 중요한 자연의 섭리 한가지를 설명한다. “상류에서 물을 흐려 놓으면 하류가 망가진다는 것” 위정자나 자본가, 즉 사회 결정권자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하류에 있는 대다수의 서민들 그리고 자연이 훼손된다는 것. 몇 안 되는 몰상식하고, 이익만 쫓는 영화가 말하는 ‘쓰레기’들이 이상하게 성공한 자리에서 올라가 ‘악’에 영혼을 바치고 전체를 흐린다. 얼마나 재미가 없으면 ‘마약’이란 것도 한다. 누리고 즐거운 것도 모자라 무언가를 파괴하고 중독에 빠져 스스로 자멸하는 모양새. 문제는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는 쪽은 항상 피해자. 힘없는 대다수의 약자라는 사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의 ‘악’과 자연의 ‘순수’함 간의 대립구도가 작금의 지구 환경까지 기울게 만든 게 아닐까? 지금의 기후나 환경 문제 역시 맥락이 통한다. 좀 더 돈 벌자고, 조금 더 편하게 살겠다고, 그것도 일부, 극히 일부 쓰레기 떄문에 전체가 망가진다.

 

자연과 이를 해쳐 돈을 벌어보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혼재돼 ‘악’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사실상 ‘악’은 엄연히 존재한다. 반어적인 표현인 듯. 기자가 바라 본 자본을 위시한, 인간의 욕심 자체가 어쩌면 악의 근원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자연에는 선과 악 그리고 정의가 없다. 악은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이러한 통념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를 보기 전, 제목에 나름 기대가 됐다. 그래도 ‘선’이란 것에 좀 더 기울고자 했다. 하도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봐서 말이다. ‘악’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이 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은, 좀더 강화된 확증을 가지고 나왔다.

 

영화는 자연을 상징하는 ‘숲’에 두 마리 상처입은 ‘사슴’이 거친 숨소리로 잦아들면서 안기 듯 끝난다. 인간의 생을 관장하는 산소, 이를 생산하는 주체는 나무 그리고 전체인 숲이다. 그 안에 있어야, 숲이 살아있어야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다. 며칠 전 목이 심하게 아팠다. 이상하다 싶어, 일기예보를 봤더니 중국에서 날아온 초미세먼지가 심각하게 서울 공기를 흐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숨을 못 쉬게 돼, 온전히 산소를 못 들이마시니 당연히 통증이 수반된다. 이 당연한 원리를 훼손하고, 돈과 욕심으로 바꿔치기 하는 일부 ‘쓰레기’가 이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악’의 근원은 사실 몇 안 될 것이라고 기자는 본다. 경험한 세상과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4계절이 뚜렷한, ‘가보고 싶은 나라 1위’인 대한민국에 산소를 못 돌게 하는 일부 자본가와 위정자 그리고 숨은 세력이 전체 사회를 구성하는 멀쩡한 혈관에 무리를 가져와 국민들이 염증과 피를 내는 불균형이 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아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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